참순이네

1박 2일의 짧은 단양 여행기

단양을 다녀왔다. 단양과 담양조차 구별하지 못했던 서울 촌놈인 나로서는, 꽤나 먼길이었다. 거기에 여행 전 날 만취해 출발 시간 1시간 전에서야 겨우 일어난 내게, 3시간 반의 이동은 힘든 여정이었다. 몸이 힘든 것 보다는 퍼 자는 나를 재우고 묵묵히 운전하는 여자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든다.

여자친구가 배고파하는 눈치였지만, 한숨이라도 더 자려 다음 휴게소를 외치다가 결국 도착한 곳은 제천 임시휴게소였다. 고속도로를 빠져나가기 전의 마지막 휴게소라, 어쩔 수 없이 멈춘 곳이었다. 술 냄새를 풍기며 반쯤 감긴 눈으로 헛개수나 찾는 나의 모습보다 더욱 초라한 휴게소다. 그런 내 모습에도, 여자친구는 한마디 질책의 말조차 하지 않았다.

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단양에 들어오고, 패러글라이딩을 하기 위해 계속해서 달렸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길이 펼쳐진다. 햇빛을 받은 나뭇잎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풍요로운 가을의 빛을 발하는 풍경이 보인다. 비로소 술이 깨어 여행을 왔음이 실감난다.

단양에 들어오며 많은 생각이 든다. 서울에서 매일 같이 보는 외국인 관광객들, 그들은 서울이 아닌 단양에 와야 한다. 단양이야말로 평생을 한국에서 살아온 내가 생각하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특히나 가을 속의 단양은, 해외에서도 본 적 없는 아름다운 색을 가졌다.

패러글라이딩은 여자친구와 내가 합쳐서 20만원 정도 지출이 들었다. 산 중턱에 있는-꽤나 산을 올라가야 하는-업체인데, 주변에 이미 많은 동종 업체들이 많았다. '다른 곳에서 할걸' 하는 아쉬움은 전혀 들지 않는다. 충분히, 만족스러운 업체였다.

산 중턱에서 바라본 단양의 모습은 그야말로 신이 내린 관광지다. 패러 글라이딩을 하면 말굽 모양으로 형성된 단양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숨 막히는 아름다움이다. 내가 간 날은 미세먼지가 많이 껴서 시야가 좋지 않은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자연의 모습에 스스로가 위축된다.

업체에서는 개를 한마리 키운다. '바람이' 라는 이름을 가진 놈인데, 생김새가 영락 없이 유럽의 산골마을에 있을 법한 놈이다. 이 놈 덕분에 여자친구와 웃고 떠들며 더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만사가 그렇다. 항상 큰 행복을 찾아 헤메지만, 정작 날 웃게 하는건 이런 사소한 행복이다.

아마 단양 패러글라이딩 업체 중 가장 유명한 곳은 카페산 일 것이다. 정말 크고, 깔끔하고, 이쁘다. 완벽히 내 취향의 모습이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다. 불꽃놀이 축제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것은 내게는 축제 느낌이지만, 카페산은 도떼기시장 느낌이다.

문득 일몰 시간에 패러글라이딩을 했어도 좋았겠다는 후회가 들었다. 하늘을 날고 있는 저 사람들은 일몰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아름답다는 생각을 할까? 행복하다는 생각을 할까? 집에 언제갈지 고민할까? 아무 생각 없나?

숙소는 대명리조트에서 묵었다. 단양을 오게 된 가장 큰 이유도 이 곳 때문이다. 여자친구와 나는, 전국의 대명리조트를 전부 가보자는 도전을 했다. 그래서인지 서울 근교의 대명리조트는 전부 가봤고, 이제 점점 서울에서 멀어지고 있다. 단양의 대명리조트는 충분히 만족스러웠고, 깔끔했다.

차를 타고 다시 나와 도담상봉으로 향했다. 단양 8경이라 불리는 곳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다. 밤에 빛나는 도담상봉과 도로의 불빛은 낮에 보았던 가을의 아름다움만큼이나 찬란했다. 아름다운 풍경에 어울리지 않게, 사람이 정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명동 거리를 헤메고 있는 외국인들을 잡아다 이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에게도 한국이 아름다운 곳으로 기억에 남기를 바라기에..

저녁으로는 벨기에 스타일의 한국에서 만든 맥주를 마셨다. 물론, 한국에서 만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구매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가격이 왜 쌌었는지 이해가 된다. 여자친구와 앉아 별거 없는 이야기를 하며, 맥주와 떡볶이를 먹는다. 사람은 행복한 때에 행복한 줄 모른다 했다. 문득 먼 훗날에, 오늘이 어떻게 기억될 지 궁금하다. 분명 내 젊은 날의 추억 중 하나로, 삶을 지탱해주는 원동력 중에 하나가 될 소중한 기억의 조각이 될 것이다. 이 순간을 함께해주는 여자친구에게, 그저 고마운 마음 뿐이다.

이튿 날 아침에는 구경시장이라는 곳에 가서 만두를 먹었다. 아무 생각 없이 간 곳이었는데, 마케팅을 전혀 하지 않는 유명한 맛집이었다. 김치만두는 이미 품절되어 주문할 수도 없었다.

확실히 맛있다. 적당한 온도에 훌륭한 식감, 사람이 바글바글한 이유가 있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찾은 곳에서 유명한 맛집 메뉴를 겪게 되니 기분이 좋다. 언제나 예상치 못한 행복은 더욱 큰 기쁨으로 다가온다.

구경시장을 나와 강 쪽으로 가보니, 절경이다. 가을 옷을 입은 산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사람들, 조용히 빛을 발하는 강물까지..

몸을 움직여 다음으로 찾은 곳은 잔도였다. 원래는 만천하 스카이 워크로 가려 했는데, 생각보다 힘든 길이 될 것 같아 잔도로 일정을 바꿨다. 지금 생각해도 훌륭한 판단이 아니었나 싶다. 보기드문 풍경이었다. 절벽을 타고 이어진 길, 강 냄새와 산 내음이 강하게 풍겨오는 곳이다.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진부한 관광 코스가 아니었다. 내게는 신기하고, 특별한 곳이었다.

잔도 길의 끝에는 굉장히 한국스러운 야외 식당이 있었다. 나는 여행을 가면 그 곳의 가장 로컬적인 곳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야외 식당은 한국의 가장 로컬적인 측면 중 하나가 아닌가?

어제에 비하면 무척 하늘이 맑았다. 오늘 패러글라이딩을 하면 더 좋았을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인간은 어느 상황에서나 후회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라면이라고 하지 않는가. 내가 그랬다면, 저랬다면...

여자친구와 나는 성당에서 만난 사이다. 우리는 여행지를 갈 때마다 항상 그 곳의 성당을 찾는다. 단양 성당 또한 그 중에 하나다. 규모가 크지 않았지만, 붉은 벽돌과 잘 정돈된 성당의 모습은 내게 편안함을 준다. 설령 처음 가는 성당이라 하더라도, 성당에 들어가면 집에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서울로 향하는 길, 보기 힘든 빛내림이 우리를 반긴다. 서울로 돌아가면 다시 쳇바퀴같은 삶이 시작되는 것을 알기에, 마음은 무겁지만 하늘의 빛내림은 무심하게도 눈부시게 아름답다. 마치 또 오라는 듯이, 다음에 보자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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