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순이네

가을 날의 2박 3일 삼척 여행기

여자친구와 2박 3일로 삼척 여행을 다녀왔다. 요새 삼척이 한국의 나폴리다, 산토리니다, 유럽이다 뭐다 말이 많다. 여름에는 바다에서 스노클링도 하고 투명카누도 타고 서핑도 하고 할 것이 많겠지만, 가을에는 바다에 들어가면 얼어 죽는다. 바닷물이 보통 2달 정도 온도 변화가 늦어서 가을이 오히려 놀기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바다에서 놀 때 바다 속에만 종일 있나보다. 내가 느끼기에는 가을에 바다에서 놀면 물에서 나오자마자 얼어 죽을 것 같다.

용화해수욕장

이전에 여행 포스팅을 했던 대로 이 글을 여행 후기글 겸 정보 공유 차원에서 작성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쓰는게 너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이번에는 그냥 일기장 식으로 작성하려고 한다. 블로그에 반말을 쓰는게 너무 오랜만이라 뭔가 예의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굳이 뭐하러 인터넷 친구들에게 극존칭 써가며 예우 해주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내가 2박 3일 동안 여자친구와 삼척에서 가을 날에 뭘 어떻게 하고 놀았는지 써내려가 보겠다.


사실 말이 2박 3일이지 첫 날에 삼척을 저녁 9시 쯤에야 도착을 했다. 묵은 곳은 삼척 솔비치였는데, 앞서 말한대로 한국의 산토리니라고 불린다고 한다. 산토리니를 가 본 적은 없지만 확실히 늦은 저녁 도착했음에도 아름다운 리조트라는 것을 직감할 수가 있었다.

 

웰컴 센터에서 체크인을 한 후 다시 차를 타고 콘도로 향했다. 늦은 밤에 체크인을 한 만큼 방은 제일 안좋은 1층 구석 방을 받았다. 여자친구가 아쉬워했지만 결과가 이런 것을 어떡할까, 어찌되었건 여행의 가장 중요한 점은 '어디서' 자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자느냐이다.

예거

도착하자마자 리조트에 있는 마트에 들려 과일과 안주를 사고, 가져온 양주를 마셨다. 내 여자친구는 술을 정말 잘 탄다. 기가 막히게 맛있게 탄다는 의미 보다는 내 취향을 최대한 맞추려 끊임 없이 피드백과 함께 개선점을 찾아낸다. 이런 식으로 술을 마시다 보면 내가 VIP가 된 느낌이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여자라면, 내 여자친구를 본 받기를..


술을 마시고 다음 날 간신히 일어나 라면을 끓여 먹으려는데, 햇반을 데울려고 보니 전자레인지가 없었다. 귀찮지만 중탕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햇반

여자친구가 햇반을 중탕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사실 저 장면을 보며 깊은 상념에 빠졌다. 상식적으로 중탕을 하기 위해서는 후라이팬 바닥에 햇반이 닿으면 안되는 것이 아닐까? 그 때도 그 생각이 들어 여자친구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여자친구 또한 답변을 주지 못했다.


콘도를 나와 차를 타고 밖으로 향했다. 이번 우리 여행의 테마는 '힐링'이었다. 우리 커플은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힘을 빼고 싶지 않았다. 여행에서 마저 지쳐가며 돌아다니기에는 우리네 삶이 이미 충분히 힘들지 않은가?

궁촌정거장

그래도 여행을 왔는데 아무것도 안하고 리조트에만 박혀 있기에는 좀 아닌 것 같아 레일 바이크라는 것을 타러 갔다. 아, 여긴 꼭 미리 예매해야 한다. 단체 관광객이 많아서 빨리 안하면 표도 못구한다.

 

삼척 레일바이크는 두가지 코스가 있다. 궁촌정거장에서 용화정거장으로 하는 코스와, 용화정거장에서 궁촌정거장으로 가는 코스다. 우리는 차를 궁촌정거장 주차장에 두고 궁촌정거장에서 레일 바이크를 탑승했다. 가격도 별로 안비싸다. 2인승이 2만원이었다.

삼척 레일바이크

막상 레일 바이크를 탑승하고 페달을 밟기 시작하니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이 기분은 마치 롤러코스터가 서서히 위로 올라가는 기분과 비슷했다. 물론 차이점은 여기서는 우리가 직접 페달을 밟아 앞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어떤 가족을 보니 아버님 혼자서 열심히 4인승을 끌고 있었다. 차마 오래 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역시나 내 여자친구는 나 이상으로 열심히 페달을 밟아 주었다. 정말 멋있는 여자다.

삼척 레일바이크

나는 레일 바이크에 별 기대가 없었다. 크게 감흥이 없을 것이라는 직감 때문이었다. 남자의 직감은 한 여름의 수면양말 마냥 쓸모 없다고 했던가! 레일 바이크 출발과 동시에 나타난 동화같은 나무들과 레일의 모습에 나는 진정으로 감탄했다. 무언가에 만족하기 위해서 가장 쉬운 방법은 기대를 안하는 것이다.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아지기 시작했다.

삼척 해변

동화 같은 비주얼의 나무들 사이로, 그야말로 그림 같은 풍경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저 바다를 보자마자 삼척이 왜 한국의 산토리니, 나폴리, 기타 등등이라 불리는지 알 수가 있었다. 저 영롱한 바다색과 지평선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이 알 수 없이 두근거렸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며 울창한 나무들 사이의 낡은 철로 위에서 여유로히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나와 여자친구의 모습은 아마 한 폭의 명화 같았을 것이라 예상된다.

삼척 레일바이크

여행 전 어떤 블로그에서 뒷사람이 자꾸 가까이 따라 붙어서 자기도 빨리 밟았다는 후기를 보았었다. 그래서 나는 출발 전부터 다짐을 했었다. 뒤에서 침을 뱉어도 내 페이스대로 가겠다고. 헌데 이런 나의 단호한 결심을 무색하게, 뒷사람이 나보다 더 여유로웠다. 앞사람은 좀 쫓기는 듯 빨리 가는 모습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앞뒤로 간격이 정말 넓었다. 나는 운전할 때도 앞차 간격을 바짝 붙이는 편이다. 평소 양보를 못하는 나는 못난 사람이다. 그런 못난 나에게, 그 어떤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이 하나의 철로는 지난 세월 우리네 사회가 끊임없이 우리에게 요구하던 경쟁사회를 잊을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비록 이 철로를 만든 것은 내가 아니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이 철로는 나의 것이었다.

삼척 레일바이크

중간에 휴게소가 있어 멈춰서 사진도 찍고 셀카도 찍고 촬영도 했다. 일정 시간이 지나자 안내원들이 빨리 차에 탑승하라고 소리를 치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말을 안듣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허허~' 웃으며 차에 탑승하는 모습을 보며 평소 같았으면 마음 속으로 온갖 욕을 다했을 텐데, 그 순간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여행의 묘미는 이런 것이다. 나를 기분 좋게 만들고, 기분이 좋은 나는 여유를 갖게 되고, 여유를 가진 나는 멋진 남자가 된다. 뭐 사람들이 살다보면 늦기도 하고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는가?

삼척 바다

다시 출발한 레일바이크는 나에게 밑도 끝도 없이 말도 안되는 풍경들을 연달아 보여주었다.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며 페달을 밟고 있자니, 마치 내가 바다 위를 달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저 먼 바다 끝엔 뭐가 있을까, 다른 무언가, 세상과는 먼 얘기 아닐까?

삼척 레일바이크

그리고 위 사진과 같이 아름다운 터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너무나 아름답지 않은가? 정말 아름다워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이 터널을 실제로 가보기를 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터널이 레일 바이크 최악의 코스였다. 터널을 한 3개 쯤 지나는데, 첫 번째 터널은 그야말로 꿈 속 열차를 달리던 나를 다시 헬조선으로 끌어들였다. 놀랍게도 터널 속에서 트로트가 흘러 나오고 있던 것이다. 한국의 산토리니에서 트로트라니, 코리아의 나폴리에서 트로트라니! 심지어 가사는 더욱 가관이었다. "오세요~ 오세요~ 오세요~~ 삼척으로 오세요~", 만일 이 터널을 기획한 자가 삼척을 각인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그것은 111% 성공했다. 나는 여행을 끝내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저 멜로디를 잊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트라우마와 같아서, 간혹 군대 꿈을 꾸며 벌떡 일어나는 내게 또다른 악몽이 되었다. 차라리 내가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이었다면, 음정이 조금 이상한 노래가 흘러나오긴 해도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내용이겠지~' 할 수 있었을텐데. 나는 너무나 의도를 완벽히 파악해버렸다.


궁촌정거장에서 출발한 레일 바이크는 그렇게 용화정거장에 도착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원래는 용화정거장에서 다시 궁촌정거장으로 가는 셔틀버스가 있는데, 이왕 용화까지 온 김에 장호항에 가고 싶어 셔틀버스 탑승을 하지 않았다. 장호항까지 걸어가기는 무리인것 같아 택시를 타려는데 놀랍게도 택시가 단 한대도 없었다. 이럴수가.

삼척 케이블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던가, 우리는 블로그에서 스쳐 지나가듯이 보던 해상 케이블카를 정말 우연히 마주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마주친 케이블카는 무려 장호항까지 가는 편의를 우리에게 베풀어주고 있었다. 해상 케이블카는 용화-장호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레일바이크까지 한다면 궁촌-용화-장호를 모두 액티비티로 연결하는 한국의 천국행 연결코스라고 할 수 있다.

삼척 케이블카

그렇게 케이블카를 결제를 하고 1시간 대기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케이블카 탑승을 위해 대기 중인 수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케이블카는 단 한대가 운영되고 있었다. 두대가 지나다니면 안되는 것인가? 생각이 많이 들었지만, 한대인 것을 어쩌랴. 그래도 주변에 공원도 있고 카페도 있고 해서 여유롭게 케이블카를 기다릴 수가 있었다.

용화해수욕장

케이블카 정거장에서 바라본 용화해변은 역시나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여름이 되면 저 해변이 사람들로 득실거릴까? 잔잔히 물결치는 파도는 마치 내게 당장 나에게 오라는 듯 손짓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우리는 장호항으로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아쉬운 용화를 뒤로하고 케이블카를 탑승하러 몸을 옮겼다.

장호항

장호항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장호항으로 걸어가는데, 코스가 정말 쉽지 않았다. 여자친구나 나나 운동부족인 것을 뼈저리게 실감할 수가 있었다. 장호항의 눈부신 풍경들이 보이긴 하는데, 레일 바이크도 타고 케이블카도 1시간을 기다리고 또 걷자니 체력이 못버텨주는 기분이었다.

장호항

여자친구가 '꼭 가봐야 한다!' 말하던 장호항의 다리가 보였다. 여름에는 저기서 스노클링도 하고 투명카누도 타고 하나보다. 물론 지금은 바다에 있는 것은 갈매기 밖에 없었다. 한 꼬마아이가 과자를 미친듯이 바다에 투척하고 있었는데, 갈매기들이 더 미친듯이 그것을 낚아채가고 있었다. 진풍경이었다.

장호항

앉아 쉬면서 커피를 한잔 마실까 했는데, 배가 너무 고팠다. 장기간 운동(?)을 했더니 몸이 못버텨주는 것을 넘어 이젠 배가 괴로워하고 있었다. 나폴리 카페를 뒤로 하고 장호항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장호항에서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용화로 갔다. 용화에서는 운 좋게 레일바이크 셔틀버스를 탑승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우리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궁촌으로 갈 수가 있었다.


이미 배가 고플 대로 고파 예민해진 우리는 당초 계획했던 삼척항으로 향했다. 삼척항의 활어회센터가 아주 기가 막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삼척항 활어회센터

해가 진 삼척항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바닷물은 달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고, 삼척항의 우락부락한 어부들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처럼 생선을 구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많은 손님들도 보였다.

삼척항 활어회센터

삼척항 활어회센터는 가격이 집들마다 다 똑같다고 한다. 규모가 그렇게 큰 편도 아니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수는 꽤 많은 듯이 보였다. 어느 집에서 사야하나 고민을 하는데 마침 어떤 아저씨가 우리에게 잘해주겠다며 호객행위를 걸어왔다. 배고팠던 우리는 바로 넘어가주었다.

참돔

참돔을 4만원에 구매했다. 솔직히 싼 값인지 비싼 값인지 알 수가 없다. 차라리 서울에서도 많이 먹어 본 광어였으면 짐작이라도 할 텐데, 참돔이라 이게 비싼건지, 싼 건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래, 삼척항에서 직접 샀으니 중간 유통 단계가 없어 분명 더 싸게 사긴 한 거겠지, 하고 자기 위로를 하며 회를 싸들고 집(솔비치)으로 향했다.

참돔회

취사가 가능한 콘도라 정말 다행이었다. 참돔을 맛있게 먹고 매운탕까지 해서 마무리 했는데, 배가 아주 꽉 차게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행복한 우리의 마지막 밤도 마무리 되었다.


다음 날 아침, 11시 체크아웃을 해야 하는데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도저히 눈이 떠지지가 않았다. 여자친구가 씻는 동안 까지 기를 쓰고 자다가, 10시 30분에 일어나 30분 만에 나갈 준비를 하고 체크아웃을 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솔비치를 제대로 보지를 못한 것 같아서 짐을 맡긴 후에 산책을 시작했다. 솔비치 오러 삼척에 오는 사람도 있는데,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한번 봐두고 싶었다.

삼척 솔비치

솔비치의 건물들은 대게 이런 식이었다. 화이트를 기본으로 하고 블루로 포인트를 주는 느낌? 산토리니 스타일이라고 한다. 그 놈의 산토리니..

삼척 해변

바다가 정말 가까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 바다에 가서 발이라도 한번 담궈볼걸 후회가 들기도 한다. 근데 솔비치에서 바다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솔비치로 올라올 자신이 없어 포기했었다.

삼척 솔비치

정말 이쁜 리조트다. 그 말 밖에 나오지가 않았다. 사람들이 괜히 몰리는 곳이 아니었다. 중간에 보니 웨딩 촬영을 하고 있는 신부도 있었다. 그럴 만한 이쁜 곳이다.

삼척 바다

위의 사진은 내가 생각하는 삼척 여행의 베스트 샷이다. 아름다운 삼척의 바다색과 해변의 모래색, 그리고 그네까지 내가 기억하는 아름다운 삼척 해변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준 사진이다. 나는 기억력이 좋지 못한 편이다. 그리고 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주의이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는 영원하지 못하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삶 속에서 이 사진은 영원히 내게 남아줄 것이다.


여행 후기 글을 쓰는 것은 참 재밌는 일이다. 여행을 하던 중의 기분을 다시 느낄 수가 있고, 내 글로 하여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일은 더욱 기분 좋은 일이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가 삼척을 조금이라도 더 가보고 싶게 되었다면, 당장 떠나라고 권유하고 싶다. 한국의 산토리니, 나폴리, 기타 등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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